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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문명의 꽃 보로부두르는 천 년의 침묵을 깨고 다시 우리 앞에 서 있다.
머라피 화산
1천 년 전, 고대 자바인들의 삶과 죽음을 다스려온 화신 머라피.
보로부두르의 동쪽 100킬로미터에 위치한 메라피는
지금도 연기와 불을 내뿜는 활화산이다.
 <보로부두르에서 본 머라피 화산>
보로부두르 사원동쪽면 정면이 머라피 화산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문득 폼페이의 최후를 두려워 했던 로마의 이야기 처럼, 고대 자바인들도 화산의 두려움을 불심으로 극복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나그네의 생각이 든다. 1006년 전, 머라피 화산이 폭발했다. 화산이 깨어나 분출하자 그 화산재는 보로부두르를 덮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화산재에 묻혀 있는 보로부두르의 존재를
천년동안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천 년이란 장구한 시간을 은둔한 보로부두르.~
보로부두르 발굴
보로부두르를 축성했던 약 750년에서 800년 경 이곳에서 살았던
고대 자바인들의 집터와 수로가 드러났다.
이 발굴 지층은 보로부두르의 축성 구조를 밝히는 단초다.
보로부두르는,
세 개의 자연 언덕을 수 십 만 번 깎아낸 화산성 지층에
갈색 점토를 넣어가며 거대한 인공의 산을 만들고,
그 위에 200만개의 화산석 안산암 석재를 쌓아 세워졌다.
그 무게만도 350만 톤.
그러나 화산 폭발로 천 년 전 찬란했던 불교 유적의 불빛은 꺼져버렸다.
하지만 그 불씨는 당시 자바를 점령하고 있던
영국의 부총독 토마스 래플즈에 의해 되살아났다.
1814년 그가 이끄는 발굴대는
폐허 속에서 화산재에 덮인 거대한 불상과 불탑을 발견한다.
그 후 200 여 명의 공병대를 동원한 45일 간의 대공사가 이루어졌다.
밀림을 헤치고 화산재를 치워내니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 보로부두르, 당시엔 기반이 무너져 붕괴 직전의 모습이었지만,
20여 년에 걸친 복원과정에서 놀라울 정도로 치밀한 건축술이 드러났다.
미스터리한 것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200만개의 석재들을 어떻게 만들었나-하는 것이다.
보로부두르 + 석재들
보로부두르에 사용된 석재들은 일정한 규격으로 다듬어져 있다,
길이 25센티미터, 높이 15센티미터.
안산암이라 하여 화산성질을 갖고 있는 이 석재들은
석축과 불탑, 부조를 새긴 돌들까지
그 쓰임새의 용도와 순서가 한 치의 오차 없이 미리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이 수 많은 석재들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엘로 강, 프로고강
보로부두르의 언덕을 흘러오는 두 개의 강, 엘로강과 프로고강이다.
자바인들은 두 강물이 합류하는 곳을
'하늘의 강이 지상으로 내려온 곳'이라 믿어 신성시했다.
이 두 개의 강은 합류해 인도양으로 흘러든다.
1995년부터 보로부두르 지역의 인근 마을과 강의 지질을 탐사해 온 지질학자 헬미 무라완토 교수.
그에게 화산암은 보로부두르의 미스터리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다.
호수
약 2만 년 전 생성된 호수는 그 뒤 4천 년 전
다시 두 갈래로 나뉘면서, 언덕을 만들었다.
보로부두르가 지어질 당시만 해도 보로부두르 주변은 깊은 호수였다.
그런데 1006년 전 머라피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가 호수를 다 덮어버렸다.
13세기경엔 호수가 완전히 대지로 바뀌었고, 그 후 보로부두르는 열대우림 속에서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이다.
.jpg) 보로부두르는 언덕 위에 지어졌다. 호수로 유입된 흙이 산언덕을 만들었고
주변은 큰 화산들이 둘러싸였습니다. 남쪽에는 므노레 화산이 있고
서쪽에는 숨빙과 신도르 화산이 있습니다.
북쪽에는 메르바부와 메라피 화산이 있고요. 호수 가운데의 보로부두르의 산언덕은
화산들이 주변을 감싸고 있어서 마치 보로부두르는 호수에 핀 연꽃 같았습니다.
엘로강과 프로고 강
하늘의 강은 호수가 되고 호수는 대지가 되고,
그 대지에 다시 엘로와 프로고 강물이 흐른다.
매 순간 변화하는 강물처럼,
인간의 역사도 그 강물에 몸을 던져 흘러간다.
고대 자바인들이 신성스럽게 여겼던 강, 엘로와 프로고.
수 천 년의 세월이 지난 그곳엔 여전히 역사가 흐른다.
패닝평야전경
엘로와 프로고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펼쳐진 드넓은 케두 평원.
“자바의 정원” "신성의 대지"라 불리는 이 케두 평원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강 유역의 토지는 화산재가 양분을 공급해 토양이 비옥하다.
때문에 일찍부터 이곳은 수전 농업이 발달했다.
년 간 3, 4모작을 하는 케두 평원은
고대 자바인들에게도 풍성한 곡식을 내주는 풍요의 땅이었다.
이 케두 평원을 지배하는 자가 중부 자바를 지배할 수 있었다.
'힌두 신앙을 가진 산자야 왕이 곡물과 금광이 풍부한 쿤자라쿤자에 링가를 건립했다.'
쿤자라쿤자는 케두 평원이었고 .
7세기, 산자야 왕은 이 곳에 힌두교신 시바를 신앙하는 마타람 왕조를 건립한다.
그러나 8세기, 케두 평원의 주인이 바뀌게 된다.
불교 왕국 사일렌드라는 힌두교 왕국 마타람 왕조를 몰아내고
케두 평원에 거대한 불교 유적 보로부두르를 세운다.
보로부두르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푸람바난은
샤일렌드라의 본거지였다.
그런데 이색적이게도 이곳엔 힌두교 사원인 로로종그랑이 세워져있다.
그 이유는, 9세기 마타람 왕조의 후예 라카이 피카탄왕이 다시 사일렌드라를 멸망시키고,
이 땅에 힌두교 사원, 로로종그랑을 세운 것이다.
힌두교와 불교를 신봉했던 두 왕조의 흥망성쇠는
중부 자바 케두 평원과 푸람바난 지역을 무대로 펼쳐지고 이어져왔다.
인도 갠지스 강 중류, 아르띠 푸자가 매일 밤 펼쳐지는바라나시는 힌두교와 불교의 전파지였다.
역사 기원 1세기 여명기부터 인도의 문명은 바닷길을 통해 동방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 후 5세기, 힌두교와 불교 역시 인도양을 건너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팔렘방과 중부 자바 페카르롱안에 전해졌다.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 페카르롱안은 해양 실크로드의 중간 기항지이자, 사일렌드라 왕국의 주요 항구였다.
문명은 길을 통해 이뤄진다.
바다는 그 길의 시작에 있고 끝에 머문다.
인도양의 파고를 넘어 오고간 항해자들은,
동서 문명의 전파자들이었으며 해류를 따라 순례하는 순례자들이었다.
보로부두르 벽 부조..
보로부두르 회랑 벽에는 4척의 배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아웃 리거(outrigger)로 불리는 원양항해를 하던 고대 자바인들의 범선이다.
이 범선은, 화엄경전에 나오는 배로 자재뱃사공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대여, 나는 바닷가에 살면서 지혜와 깨달음의 바다에 들게 합니다.
배를 타고 안전하게 항해하는 길을 안내하고, 선원들을 무사히 목적지까지 안내합니다.
고통과 죽음의 바다를 건너야 했던 바다 상인들에게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지혜를 가르치는 보로부두르의 배. 거대한 해류가 동서 문명의 길을 안내했음을 증거하는 아웃 리거의 항해자들은
왜 폭풍 치는 검은 바다를 건너 인도네시아로 향했던 것일까.
바다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네시아가 스펀지처럼 받아들인 인도의 힌두문명.
그러나 그것은 인도의 힌두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자바만의 독특한 힌두였다.
신들이 바다를 건너왔다고 믿는 이들.
또한 죽은 자의 영혼이 바다여신에게 돌아간다고 믿는 이들.
그들은 향기로운 꽃물로 몸을 정화하고 바다의 여신을 맞는다.
신에 의해서 정화되고자 하는 그들은, 바다의 여신에게 그 헌신을 바친다.
고대 자바, 그 바다에 닻을 내린 이들은 단순한 “바다의 상인”이 아니었다.
동방 인도네시아에 신과 종교를 전한 순례자들이었다.
이들 대다수는 “바다를 지키는 자” 였으며, 연등불의 특별한 신앙을 가진 이들이었다.
목숨을 건 바다의 항해자들이 도착한 땅, 인도네시아 자바. 산스크리트어로 수바르나부미는
담배, 황금, 향신료와 침향이 나는 “황금의 땅”이란 의미다.
보로부두르 근처, 중부 자바의 마글랑 역시 수바르나부미, 즉 '황금의 땅'이다.
이곳은 마을 공동체로 담배 잎을 말리고 향신료 찐게를 거둬 말리는 케두 평원의 땅으로, 예전 사일렌드라의 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도네시아 웨삭데이
사월 초파일,
인도네시아에서 와이삭 데이라 부르는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일산을 쓴 동남아시아 각국 승려들이 이루는 행렬은,
길 위에 피는 만다라와 다르지 않다.
왕과 사신들, 승려들이 배를 타고 문듯 사원에서 보로부두르까지 3킬로미터의 연등행렬을 이룬다.
이는 인도에서 전해진 불교의 전승을 계승하고자 함이다.
초파일 보로부두르의 마당에는,
수 만 명의 신도들이 모여 예배와 공양의 장엄을 이룬다.
꽃이 펴도 깨닫고, 보로부두르의 언덕을 지나는 바람 소리에도 깨닫는다.
수백 명의 중생들이 한 입 맞춰 합송하는 깨달은 자, 붓다의 가르침은 과연 무엇인가.
보로부두를 찾는 이들은 그 누구라도 순례자가 되어 회랑을 돌고 피라미드식 계단을 올라 보로부두르의 정상에 이른다.
.jpg) 보로부두르의 정상엔
어린 나그네로서 길을 찾아 나선 선재동자처럼, 이 시대 다양한 선재들이 모여 있다.
그 선재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깨달음을 구하고 불탑에 예경을 드린다.
보로부두르의 불탑은 진리의 길로 들어선
붓다의 영원한 삶이 숨겨져 있는 집이다
2천 5백 년 전의 스승.
‘나의 가르침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했던 붓다의 그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지상의 모든 번잡함을 초월해 영적인 세계를 구현한 도시가
보로부두르의 정상이며, 붓다의 가르침을 담은 그릇이 바로 보로부두르다.
앙코르문명이 꽃피우기 200백 전.
인도가 아닌 동방에서, 바다의 실크로드를 오갔던 해양 왕국에 의해 세워진 불가사의한 불교유적.
보로부두르는 그렇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고대 자바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보로부두르의 부조 속 수행자의 모습은 나와 다르지 않고,
보로부두르를 건설한 이들의 염원 또한 오늘 우리의 것과 다르지 않다.
최정상 대불탑에는 불상도, 보살도 없다.
화려한 장식도, 하늘을 나는 천인도, 바다를 지키는 타라 보살도 없다.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우리들은 진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이 곧 행복이다.
그리고 그 행복을 담는 것은 오직 마음뿐이다!
지상에 피어난 만나라.
불멸의 이야기 보로부두르는 붓다의 가르침을 조용히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