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문명의 교차로 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에에 위치한 우즈베키스탄은
간다라 불상을 탄생시킨 월지족
쿠샨왕조의 근거지로 인도문화와 페르시아문화 및 그리스문화가 공존했던 실크로드의 교차로입니다.

동서문화의 교차로 우즈베키스탄은, 간다라 불상을 탄생시킨 월지족

쿠샨왕조의 근거지로 인도문화와 페르시아문화 및 그리스문화가 공존했던

실크로드의 교차로입니다.

유대교 및 고등종교에 많은 영향을 준 조로아스터교(배화교)가 번창 했던

옛 페르시아의 영역에서, 알렉산더 원정 이후 인도를 최초로 통일시킨 아쇼카대왕에 의해 불교가 전파되어 대승불교의 꽃을 피운 땅입니다.

불교발전과 전파의 중요한 길목임에도 아직까지 성지순례가 활발치 못하였으나, 풍부한 이해를 가진 해설이 함께 한다면 폭 넓은 문화교류의 이해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서역승들의 고향 우즈베키스탄은, 불교전파과정 뿐만 아니라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문명의 교류의 핵심입니다.

불교의 발전 전파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동진과정과 한계 등을 폭 넓게 엿볼 수 있는 답사일정입니다.

고구려의 사신도로 유명한 사마르칸트(강국) 벽화에서도 보듯 우리민족과의 교류뿐만 아니라 북방유목민족들의 역사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2009년 중앙국립박물관 개관100주년 기획전시로........

동서문명의 교차로 우즈베키스탄의 고대문화전시회가 열렸습니다.

메스포타미야문명 인더스문명 황하문명과 북방민족의 교차로에 위치하여 많은 민족들이 터전을 잡고, 국제무역의 요충지로 동서문화와 물자가 오고간 풍요로운 땅, 페르가나분지......

페르시아제국의 이란계민족이 살았으며,

기원전 300여년 전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들이 정복지에 정착한 서투르케스탄(중앙아시아)~

알렉산더대왕의 이후 아쇼카왕의 땅이 였으며 , 실크로드의 개척자 장건이 훗날 불상을 탄생시킨 월지족을 찾아 사막을 넘어 10년 만에 도착한 곳입니다.

기원전 160년경 감숙성에 살던 월지족은 흉노에게 쫒겨 파미르고원을 우회하여 중앙아시아 페르가나 분지에 정착을 합니다.

그 중 강성하였던 쿠샨족이 5부족을 통일하고, 그리스식민지 박트리아와 페르시아 민족까지 흡수하여 남으로는 인도 마투라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국가의 통합을 위해 불교를 장려합니다.

조로아스터교의 토양과 아쇼카왕 때 도래한 불교사상을 페르시아와 헬레니즘을 융합하여, 최초의 불상과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이 꽃피운 토양이 되었습니다.

테르메즈의 초기불교유적지 3존불과 보살상, 쿠샨왕자 등을 조각 하였던 그들의 후손은 파미르를 넘어 돈황과 쿠처, 호탄 등에 불교미술의 보고를 만듭니다.

실크로드를 넘나들었던 국제무역상인 소고드인들은 문명의 메신저가 되어 멀리 신라 땅에까지 이르기 됩니다.

아프시리압궁전의 사신도에는 동쪽의 머나먼 고구려에서 온 사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산의 제왕이라고 맹위를 떨쳤던 고선지 장군이 정복했던 석국(타쉬켄드)에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지금도 사마르칸트에는 수제 고급종이 제조가 유명합니다.


서기 384(침류왕 원년) 9월 한명의 호승(胡僧)이 지금의 영광 법성포에 도착합니다.

삼국사기<본기 권24 침류왕>에 의하면 7월에 진()나라에 보내 조공을 하였다.

9월에 호승(胡僧)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진나라에서 왔다.

왕이 그를 맞이하여 궁궐안에 모셔 예우하고 공경하나, 불교가 이로부터 시작하였다.

왕은 그의 말에 따라 불사(佛事)를 일으켜서 봉행하였고, 이듬해에 한산(漢山)에 백제 최초의 절을 짓고 10인의 백제인을 출가시켜 득도(得度)하게 하였다. 송고승전(宋高僧傳)

이분이 바로 백제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한 마라난타스님이며 한반도에 최초로 도래한 서역인 입니다.

수르한다리아지방

간다라미술을 탄생시킨 쿠샨왕조의 조상은 동쪽에서 온 월지족이다.
월지족은 수르한다리아지방(우즈베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 북쪽 아무다리아강 양안)
옛 그리스의 박트리아 땅[중국문헌 대하(大夏)]을 지배하며 제국을 키워 나갔다.
원주민과, 옛 페르시아인 그리고 알렉산더 이후 남아 있는 그리스왕국 사람들이 섞여있는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쿠산조는 화합을 모색하는 한편 구심점이 되는 종교 또한 필요로 하였다.

불상의 제작~
간다라미술의 탄생.......
불교는 태동이후 500여 년간 불상을 제작하지 않았다.
불상을 조성 할 조각기술이 없었거나 경배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보리수나 스투파 또는 법륜으로 부처를
상징하였고 형상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사상을 우선한 이유였다.
초기 불상의 제작은 조각기술이 뛰어나고 조각하기를 좋아하는 민족 , 그리스인들의 솜씨에 맞겼다.

  
비나야3존불과 달베르진보살상(1~2c), 모두 아무다리아강 유역 수르한다리야(박트리아)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이다.

소고드

소그디아나(소그드의 토지라는 의미. 유럽인은 이를 트랜스 옥시아나(아무다리야의 저편)라 부르고,
아랍에서는 마와라 안나흐르(아무다리야의 저편) 지역은 지금의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지역으로
고대 이란문화에 접목되어 있었으며
, 그 문화적 기조는 스텝과 오아시스의 이원적(二元的)생활양식의
공존에 근거한 조로아스터교
(拜化敎)였다.

그들은 한 때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였으나, 알렉산더의 침략을 받은 이후 군사력를 포기하고
지정학적 위치에 순응하여 무역경제에 주력하게 되었다
.

흔히 소무9성으로 일컽는 소고드인의 취락지역을 바탕으로 방대한 무역망과 정보망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고 문화교류의 첨병역활을 하였다
.

서투르키스탄의 정치 상황에 대한 기록으로서 7~8세기의 중국 측 사서에는 소그디아나가
사마르칸트
(康國)를 중심으로 여섯 내지 아홉 오아시스의 연방이며, 모두가 소무(昭武)라는
()을 지녀 육성소무(六姓昭武) 혹은 구성소무(九姓昭武)로 불리고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소그디아나를 중심으로 한 파미르의 서측 지역은 단독의 오아시스에 의한 독립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각각 같은 계열의 왕을 지닌 오아시스 군을 이루어 일종의 연합 국가를 구성하고 있었다
.

사산조 페르시아에 의한 지배시기를 거쳐 4세기말부터 5세기에 걸쳐 소그디아나는 급속히 부를 신장해 갔다.

6세기 초에는 에프탈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크게 번영을 구가하였으며, 560년 이후 서돌궐(西突厥)에 종속하고 7세기 중엽 이후에는 당()의 간접통치 하에 편입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독립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강국(康國:사마르칸트)사람은 누구나 뛰어난 상인이다.

남자가 5세가 되면 읽고 쓰기를 배우게 하며, 그것을 조금 깨우치면 장사를 배우게 한다.

장사를 하여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것을 좋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고 하고,

구당서(舊唐書) 198 서융전(西戎傅) 강국조(康國條)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반드시 입안에 석밀(石蜜)을 넣고, 손바닥에는 명교(明膠)를 쥐게 한다.

그것은 자식이 성장하여 입으로는 항상 감언(甘言)을 하고, 아교가 물건을 점착하듯 손으로 돈을 쥐라고
희망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호서(胡書)를 배우고 장사를 잘하여 작은 이익을 다툰다.

남자가 스물이 되면 타국에 보내고 중국에도 오고 있다. 무릇 상리(商利)가 있는 곳에 그들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이들이 남긴 대표적인 유적지가 트루판의 베제크릭 석굴의 마니교 사원유적이다.

우리나라와 상당히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이 자료에 의해

밝혀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신라 괘릉이다.

12C 아랍의 지리학자 앗 디마시카는 알리파 추종자 무슬림들이 아랍의 우마위야 왕조에 쫓겨 신라로 도망하였다
고 적고있다살림-페르시아문화, 불교와 페르시아문화 편

 
 경주국립박물관-경주출토 페르시안글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