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야스시의 소설 돈황
 

어느 날, 돈황막고굴 제 16굴에서 사경생과 함께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왕도사가 담배하나를 꺼내 피우다 멈칫 했다.
음침한 굴 안 허공으로 퍼지던 담배연기가 길게 선을 그으며 한쪽 벽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이였다.
호기심에 바닥을 쓸던 빗자루로 벽면을 쓸어보니 벽화사이로 틈새가 벌어져 있었다.
좀더 자세히 보기위해 거칠게 빗질을 하니 덧칠한 모래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벽을 두드려 보던 왕도사는 벽면이 울리는 듯한 소리에 좀더 힘을 줘 벽을 밀자,
갑자기 벽면이 무너져 내리며 뽀얀 먼지가 퍼져 나갔다.
잠시 뒤, 어둠컴컴한 굴안에 먼지가 거치자
지금껏 무심히 보았던 벽면에 문이 있는 것이 아닌가 !
장경동이 발견되는 순간이였다.
그 때가 1900526일 이른 새벽 이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이설은, 왕도사에게 야단을 맞은 사경생이 화가나 담배를 피우던 중 발견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발굴일화는 모두 허구라고 볼 수 있는데, 아마 1959년에 발간된 일본인 이노우에 야시스의 소설 둔황에서 기이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이노우에 야시스(井上靖) 1907년 일본 훗가이도 출생으로 규슈 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였으나 흥미를 잃고 중퇴 후 다시 교토대학 철학과를 다니며 미학을 공부하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역여행기를 탐독하며 먼 서역에 매료 되었던 그는 [돈황],[홍수],[누란],[이역사람],[징기스칸]같은 여러편의 서역을 무대로한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장편소설 돈황은 단편 홍수와 함께 1959년에 발표하였다.
서역을 꿈구던 문학가는 여러 편의 서역작품을 발표 후 197770세 나이에 꿈에 그리던 서역, 지금의 중국 신장위구르를 여행하였다.
 
소설 돈황은 이렇게 시작된다.

소설돈황1986년 1026
년 송나라 인종 때, 청운의 꿈을 가진 조행덕이란 청년이 개봉에 도착하였다.
500명을 뽑는 과거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33,800명의 서생중 하나였다.
몇차례의 중간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조행덕은 마지막 시험 날 차례를 기다라며 상서성의 회랑에서 대기하던 중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어느 순간 깜짝 놀라 잠이 깨었을 때는 이미 조행덕의 차례가 지난 후였다.
공들여 준비한 과거시험을 너무도 허망하게 놓친 조행덕이 마음을 잡지 못하고 시내를 거닐다가 기이한 광경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한 사내가 수레를 끌고 푸줏간 칼을 높이 휘저으며 고기를 파는데 수레에는 정육대신에 나신의 여자가 누워 있었다.
위구르 남자는 돈을 내는 만큼 여자의 살점을 베어 팔고 있으며, 부정한 짓에 대한 응징이니 싸게 돼지값에 판다고 하였다.
칼탕을 쳐 조각내서만 판다는 남자를 설득하여 여자를 돈을 주고 여자를 구하고 보니 그 여자는 한족이 아닌 탕구트족 서하 여인 이였다.
돌아서려는 조행덕을 불러 세운 여인은 자신이 가진 유일한 물건인 천조각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서른 자 정도의 알 수 없는 서하문자가 써있었다.
송나라에서 청운의 꿈을 잃은 조행덕은 그 천조각을 이용하여 국경 넘어 서하로 들어갔다.
<1986년 번역 초판본>
당시 사정은 당나라의 멸망이후 510국의 혼란기를 지나 세운 송나라는 옛 당나라의 영토 중 일부만 차지 한 상태로, 이민족인 거란이 북경지역을 비롯한 연운 16주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새롭게 부상한 여진은 금나라를 세워 거란을 압박하고 있었다.
티베트계인 탕구트족인 이덕명 이원호부자는 약화된 송과 거란의 요나라와 대치하며 지금이 감숙성지역을 근거로 대하국을 세웠는데, 대하는 송나라의 서쪽에 있어 서하라고 불렀다.
 
서하의 영주 땅에서 방랑하던 조행덕은 이원호 휘하 장군 주왕례가 이끄는 한족 부대의 병졸로 들어갔다.
몇차례의 전투에 참가하고, 때론 주둔지에서 일상을 보내던 조행덕은 점령한 영주봉화대 아래에서 아리따운 위그르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여자는 조행덕을 전장으로 떠나 전사하여 소식이 없는 약혼자의 화신으로 받아들였다.
마침, 주왕례의 신임을 얻어 서하의 수도 홍경에 갈 기회가 생긴 조행덕은 그 위구르 여인에게 1년안에 돌아오겠노라고 맹세 하였다. 기다림의 징표로 그 여인은 두개의 목걸이중 하나를 조행덕의 목에 걸어 주웠다.
 
그러나 동경하던 홍경에 온 조행덕은 자신이 궁금했던 서하문자를 배우고 한문서적을 번역하는 등 굴곡진 과거를 잊은 듯 무심하게 각종2년여를 그렇게 홍경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어디선가 본 듯한 여인과 마주쳤다.
~ 그 옛날 개봉에서 나신으로 누워 죽음을 기다리던 그여인. !
그러나 그것은 기억 속에 잠재된 착각 이였고, 그 서하여인이 아니였다.
정신이 든 조행덕은 영주로 돌아왔으나, 이미 그 위구르 여인은 거기에 없었다.
마주한 주왕례의 손에는 그 여인의 나머지 하나의 목걸이가 쥐어 있었다.
그 여인은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영주를 떠날 때 여인의 신변을 상관인 주왕례에게 부탁하였으나, 그 또한 위구르왕족인 그여인에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주왕례 또한 그 여인을 지키지 못하고 서하 왕인 이원호에게 빼앗기고 말았으니, 그 여인을 잊으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어느 날 사주를 치기위해 온 이원호와 함께 말을 타고 가던 여인은 돌아온 조행덕을 보게 되었는데,
출정사열식에 도열 했던 조행덕은 먼발치 성벽에서 사람인 듯한 물체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조행덕이 본 떨어진 물체는 지키지 못한 사랑에 성벽 아래로 몸을 날려 투신한 위그르 여인이였다.
출정을 준비하던 주왕례는 조행덕에게 " 내가 언젠가는 이원호의 목을 치리라.!"며 절규를 하였다.
조행덕은 그 후 사람이 변모하였다.
모든 게 덧없어진 조행덕은 종교에 귀의하여 불교에 심취하였으나, 몸은 여전히 격랑의 시대를 따라 여러 전장을 헤매고 다니게 되었는데, 감주와 숙주를 떠돌다가 사주 지금의 돈황에 머물게 되었다.
사주는 한대 때부터 서역교역의 목이 였기에 전쟁중에도 교역은 여전 하였다.
그 중 큰 상권을 쥔 대상이 울지광인데, 옛 호탄왕국의 후손으로 명문가 호족답게 그의 외조부는 명사산 천불동에 몇 개의 사원을 개착하고 시주한 인물 이였다.
조행덕과 친분을 나누던 울지광은 조행덕이 지닌 목걸이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는데,
위구르 여인이 남기고 간 그 목걸이는 호탄에서 나는 월광옥으로 만든 귀중한 것이였다.
울지광은 월광옥을 지닌 조행덕을 달리보며 내심 그 월광옥 목걸이를 손에 넣고 싶어했다.
격랑시기의 사주에 잠시 바람이 잦아든 틈틈이 조행덕은 불경을 서하어로 번역하며 마음을 추수리던 시간도 잠시, 곧 서하군이 돈황으로 처들어 올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고 군인과 피난민의 아우성이 혼란스럽고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완전히 혼돈에 빠진 돈황태수는 정신을 놓고 있었고, 겁에 질린 관료들과 백성들은 태수도 아랑곳 하지않고 각자 살길을 찾아 피난길에 오르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서하군에 복속하며 전장을 누볐던 주왕례는 자신이 이끌던 한족출신 휘하병사들을 모아 이원호의 군대에 반기를 들고 돌진하여 전사 하였다.
그와중에 대상 울지광은 배짱 좋게 검은 속샘을 들어내고 있었다.
돈황태수에게 보물과 재산을 숨겨 보관해주겠다는 제의를 하였으며, 조행덕에게도 귀한 목걸이를 안전하게 보관해주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그날 밤, 돈황의 큰절 대운사를 찾은 조행덕은 모두가 피난을 떠난 사찰에서 소중한 불교경전을 챙기는 세명의 승려들을 보았다.
불경을 챙기던 세명의 스님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조행덕은, 보존해야 할 경서들을 최대한 빨리 가려 짐을 꾸리라고 제촉을 하고 울지광을 찾아갔다.
울지광에게 제안을 받아 들일 터이니 낙타100마리 가량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울지광은 돈황태수의 보물과 사찰의 보물을 강탈할 욕심에 혼쾌히 준비를 한 다음 야음을 틈타 어디론가 낙타에 짐들을 싣고 사막으로 출발하였다.
밤새 돈황시내와 사막을 오가며 보물을 숨겼던 울지광은 모든 보물을 숨긴 다음 장소를 아는 낙타몰이 꾼들을 모두 불타는 저택에 가두어 불태워 죽였다.
조행덕의 옥구슬 목걸이도 보물과 함께 돈황석굴에 보관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울지광은
아직도 그 목걸이가 조행덕의 몸에 있는 것을 보고 강탈하려고 덤볐다.
목걸이를 빼앗은 울지광을 혼신의 힘으로 붙잡고 늘어지는 조행덕과 사막에서 격투를 벌이다가 그만 목걸이 줄이 끊어지고, 구슬들은 사방으로 튀어 흩어지고 말았다.
때마침 한무리의 거대한 군마들이 두사람을 아랑곳 하지 않고 거침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수만의 군마가 두사람을 밟고 지나간 후......
정신을 차린 조행덕의 눈에 큰부상을 당한 울지광이 헛되게도 사막의 모래에서 구슬을 찾다가 쓰러지는 광경을 보았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적막하던 사막의 야음속에 한무리의 사람들이 천불동에 모여 있었다.
누군가의 지시에 괭이와 망치로 석굴을 막은 입구를 막 내리친 순간 갑자기 지축을 흔드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번개가 내리쳤다.
고목처럼 순식간에 번개에 맞아 불타버린 체격이 크고 잘차려 입은 시신이 있었다.
다시 돈황은 평정을 찾고 대상들이 오가며, 천불동에도 어느 한 대상단이 큰 시주를 하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전란에 파괴되었던 천불동도 다시 수리를 하기시작 하였는데, 사주성의 어느 한 스님이 나타나 굴 하나를 지목하여 본인이 꼭 수리를 하고 싶다고 요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