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황석굴 제17굴
달 밝은 밤에 고향 길을 바라보니
뜬 구름은 너울너울 고향으로 돌아가네. 
나는 편지를 봉하여 구름 편에 보내려 하나 
바람은 빨라 내 말을 들으려고 돌아보지도 않네.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고 
다른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해가 뜨거운 남쪽에는 기러기가 없으니
 
누가 내 고향 계림(鷄林)으로 나를 위하여 소식을 전할까?
 
-왕오천축국전 중에서-

혜초스님께서 쓰신 시를 읽을 때마다 
먼 서역하늘에서 힘든 여정의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이 시속의 "내 고향 계림(鷄林)" 은 바로 신라입니다.
혜초스님이 신라인임을 알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
 

1915년에 일본인 학자 다카스키가 <혜초전고>를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혜초가 중국인 스님이 아니고 우리 신라의 스님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2010년 중앙박물관전시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 전시중 촬영


蕙超(혜초스님)704(700?) ~ 787
어려서 고국인 신라를 떠나 당나라에 갔다. 중국 광주(廣州)에서 인도 출신의 밀교승 금강지(金剛智)를 사사(師事)하고, 이십대 초반에 스승의 권유로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났다.
4년 동안 인도를 비롯한 서역 여러 지방을 순유하고 당시 안서(安西) 도호부(都護府) 소재지였던 구자(쿠차)를 거쳐 장안으로 돌아왔다.
80여 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여 년간을 당에서 밀교 연구와 전승에 전념하여 밀교의 정립에 크게 기여한 대덕 고승이다. 저작으로는 <왕오천축국전>이 있다.
 
 
혜초의 약전
혜초는 신라의 스님으로 704년 성덕왕에 신라에서 태어났다.
719년 그의 나이 16세 때에 중국 광주에서 인도의 스님 금강지와 더불어 불공을 만나 금장지를 사사하다가 금강지의 권유로 723년 경 약관에 인도로 구도의 여행을 떠났다.
그는 광주로부터 해로로 하여 동천축국으로 들어가 중천축국남천축국서천축국북천축국을 지나, 지금의 캐시미르 지방으로 해서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의 북부를 지나 소련의 영토인 중앙아시아 지방, 곧 파미르고원 지방을 넘어 중국의 신강성으로 들어와 72711월 상순, 안서도호부가 있는 쿠차국에 도착했다.
 
그 후 장안에 머무르다가, 733년 정월 1일부터는 장안에 있는 천복사에서 스승인 금강지를 모시고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이라는 경전을 8년간 연구했다.
그러다가 740년부터 금강지는 이 경전을 한역하기 시작하고 혜초는 이를 필수했다. 그러나 다음 해 가을에 금강지가 죽자 그 사업은 중단되었다.
혜초는 금강지가 죽자 그의 제자인 불공에게 다시 전기의 경전을 수학하였으니 77310월부터 대흥선사에서였다.
이듬해인 77457일에 불공의 6대 제자 중의 제 2인자로 유촉을 받았으며, 불공의 6대 제자를 유촉하는 유서에 혜초가 신라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혜초는 중국 밀교 개종의 초조인 금강지에게 사사하고 금강지의 제자인 불공에게서도 사사하여, 곧 금강지->불공->혜초로 맥을 잇는 중국 밀교의 정통을 이어받는 훌륭한 계승자가 되었던 것이다.
불공삼장이 죽자 혜초는 동료들과 함께 황제가 스승의 장례를 돌보아준데 대한 감사의 표문을 올리기도 하고 나라를 위하여 불공을 드리는데 참석하기도 했다.
혜초는 그 수 수년 동안 장안에 있다가 780415일 불경을 번역하고자 오대산 건원보리사로 들어갔다.
그는 이 절에서 전기한 불경을 55일까지 12일 동안에 다시 베끼어 그 신비한 뜻을 서술했다.
그는 787년 입적할 때까지 여기에서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