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굴(楡林窟)은 간쑤성(甘肅省) 주취안(酒泉) 안시(安西)현에 있다. 하서주랑(河西走廊)의 서부에 있으며, 북서쪽으로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붙어있다. 하서주랑이란 동쪽 오초령(烏嶺)에서 시작해 서쪽 위먼관(玉門關)에 이르는 약 900㎞ 구간의 좁고 긴 평지다. 서한(西漢, 기원 전 206년~기원 후 8년)시기 장건(張騫)이 서역을 개척한 이후 하서주랑은 실크로드 상에서 중원과 서역을 연결하는 육로 교통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신장 지역 이외에 비교적 이른 시기에 조성된 석굴은 대부분 간쑤성 내, 특히 하서지역에 분포한다. 첫 번째 이유는, 북전(北傳)불교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신장지역으로 전래됐기 때문이다. 실크로드를 따라 신장 지역 내 남북 두 길은 동쪽으로 서서히 진입한다. 위먼관 또는 양관(陽關)을 거쳐 하서주랑으로 들어가며 장안(長安, 현 시안)에 도달한다. 하서지역을 왕래하는 승려는 모두 이곳에서 잠시 머무르거나 오래 거주했다. 하서지역은 내지(內地)보다 불교 전파가 빨랐던 신장 지역과 가까워 가장 먼저 영향을 받았다. 두 번째, 16국 시기를 전후해 양주(凉州) 지역을 통치했던 통치자들은 대부분 불교를 믿었고 육성시켰다. 위서(魏書)〉 ‘석로지(釋老志)’에 보면 “양주 지역은 장궤(張軌) 이후 불교를 믿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세 번째, 양주 지역은 서진(西晉), 16국 시기 역경활동이 활발했다. 둔황 출신으로 〈정법화경〉을 번역한 축법호(竺法護)가 있으며, 쿠처가 고향인 구마라집(鳩摩羅什)은 양주에 17년간 머물렀다. 북량(北凉, 397 ~439) 시기 저록(著錄)에 보이는 역경 승려는 10여 명에 달한다. 이 중 중천축(中天竺) 승려 담무참(曇無讖)이 유명하다. 북량불교는 선(禪) 수행을 중요시했다. 승려가 참선할 때 조용한 숲이 필요했지만, 사막과 같은 황무지가 많은 자연환경 때문에 석굴을 파고 불상을 만들었다. 현존하는 하서지역의 조기(早期) 석굴은 둔황(敦煌) 막고굴, 안시 유림굴, 주취안 문수산 석굴군, 장예(張掖) 마제사 석굴군, 우웨이(武威) 천제산 석굴 등이 있다.   2호굴 서하 시기 작품이다. 동쪽 벽에는 열반도(涅槃圖)가 남쪽 벽에는 설법도(說法圖)가 있다. 서쪽 벽 남측과 북측에는 수월관음이 그려져 있다. 남측 수월관음은 돌 위에 앉아있다. 왼손은 돌 위에 얹었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손에는 염주가 걸쳐져 있으며 얼굴은 사색하는 표정이다. 이에 비해 북측 수월관음은 비스듬히 기대어 조각달을 보고 있다. 이 그림들은 당나라 때 화가 주방(周昉)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방은 인물을 자세하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인물의 신기(神氣)까지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4호굴 티베트 불교가 성행할 때인 원나라 때 조성한 것이다. 그래서 밀교 진언종(眞言宗)의 본존인 대일여래(大日如來)를 비롯해 아미타불, 밀교 금강계 만다라 5불 중 하나인 불공성취불(不空成就佛)ㆍ보생불(寶生佛)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서쪽 벽 남측에 몽고족 여자가 모자를 쓰고 합장하고 있는 그림도 있다. 동쪽 벽 북측에는 설법도가 있는데, 부처님 주위로 산에서 수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6호굴 굴입구에 화엄법계(華嚴法界)란 현판이 붙어있어 색달랐다. 이굴은 높이 24.7미터의 대불(大佛)이 특징이다. 통로 남쪽 벽에 송대 작품인 아미타경변(阿彌陀經變)이그려져 있다.  11호굴 청나라 때 대규모로 보수해 도교적 색채가 짙은 굴이다. 벽에 늘어선 18나한 또한 서하(西夏, 1032~1227) 시기의 작품이지만, 3호굴에서 옮긴 것이다. 유림굴에는 모두 42개의 석굴이 있다. 당(唐)ㆍ오대(五代)ㆍ송(宋)ㆍ서하ㆍ원(元) 시기에 만든 것이다. 벽화의 면적은 4200평방미터에 달하며 채색된 소상(塑像)은 259개에 이른다. 12호굴 5대10국(907~979) 시기 조성한 것이다. 유림굴 중 벽화가 가장 보존 잘 된 것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굴 남쪽 벽 아랫부분을 보면 가족들이 나들이를 하는 ‘출행도(出行圖)’가 있다. 북쪽 벽에는 부인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둔황 막고굴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했다. 막고굴 156호굴에는 ‘장의조출행도’ ‘송씨출행도’가 있다. 북쪽 벽 윗부분을 보면 서방정토변(西方淨土變)이 있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악기 든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극락세계를 상징한다. 굴 가운데 벽에는 10대 제자와 보살이 그려져 있고 각각의 이름도 적혀있다. 고고학자들은 막고굴 또한 이런 형식이었지만 훼손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굴 가운데에는 중국 초당(初唐)의 명의이자 신선가(神仙家)인 손사막(孫思邈)의 상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원래 불상이 있었지만 사라지자 대신 갖다놓은 것이다. 13호굴 역시 송대에 일부 보수했다. 그래서 후실(後室) 벽화는 북송 시기의 것이지만 전실(前室) 벽화는 5대10국 시기의 것이다. 벽화 색상은 단조로우면서도 녹색이 많이 나타난다. 굴을 조성할 당시 이 지역에 녹색 재질의 광물이 많이 났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15호굴 당대 중엽에 조성했지만 송대에 한번 보수했다. 안사(安史)의 난 이후 이 지역은 토번족(티베트족)이 지배했다. 그 첫 해에 조성한 굴이어서 벽화는 티베트 불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전실 북쪽 벽에 그려진 역사(力士)는 투구가 아닌 호랑이 가죽을 머리에 쓰고 있다. 호랑이 가죽은 당시 토번족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상징한다. 그에 비해 전실 남쪽 벽에는 당나라 장군 복장을 한 천왕(天王)이 그려져 있다. 후실 벽화는 송대에 다시 그린 것이다. 천 장에는 비천도(飛天圖)가 있고 사방으로 번(幡)이 있는 게 특징이다. 16호굴 막고굴을 관리하던 조씨 일가가 조성한 것이다. 전실에서 후실로 가는 통로 벽에 조씨 부부의 그림이 보이는데, 세 번째 부인은 티베트 불교를 믿는 소수민족이다. 이는 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결혼했음을 시사한다. 19호굴 역시 조씨 가문의 아들이 만든 굴이다. 통로 남쪽 벽에는 조원충공양상(曺元忠供養像)이, 북쪽 벽에는 양국부인공양상(凉國夫人供養像) 그려져 있다. 25호굴 토번이 지배하던 당대 중엽에 만든 것이다. 전실 동쪽 벽 남측 남방천왕(南方天王)의 얼굴은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 모습이다. 복장은 전형적인 당대의 것이다. 그에 비해 동쪽 벽 북측 북방천왕은 토번군 복장이다. 오른손으로는 창을, 왼손으로는 탑을 들고 있다. 북방천왕 주위로 티베트 문자와 위구르 문자가 보이기도 한다. 후실로 들면 옥색이 파도를 치듯 밀려온다. 흙색과 조화를 이룬 벽화의 옥색은 섬세한 문양과 함께 보는 이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듯하다. 북쪽 벽에는 미륵경변(經變,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경전변상도의 줄임말)이 그려져 있다. 벽화 가운데에는 부처님이 계시고 그 위로 연꽃이 옥색으로 화려하게 수놓아 있다. 부처님 아랫부분에는 왕비가 머리를 깎고 출가하는 모습도 보인다. 또한 암벽에 굴을 파고 참선하는 장면을 비롯해 부처님에게 공양물을 올리는 장면, 스님에게 법문을 듣는 장면, 소를 끌고 밭을 가는 장면 등 다채로운 모습들이 벽을 한가득 채우고 있다. 남쪽 벽에는 서방정토변(西方淨土變)이 등장한다. 아미타불 주위로 10여 명의 보살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앉아 있고, 그 아래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가운데 춤을 추는 무희가 있다. 한 몸에 머리가 둘인 공명조(公命鳥)가 악기를 연주하고 공작과 백학(白鶴)이 춤을 추기도 한다.